좀비보다 무서운 권력의 민낯
좀비는 배경, 진짜 주인공은 권력 투쟁
많은 관객들이 킹덤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킹덤이 단순한 좀비 호러물이 아니라 정교한 정치 드라마라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물론 밤마다 나타나는 좀비 떼의 공포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킹덤의 진짜 핵심은 죽은 왕을 둘러싼 권력 다툼과 세자 이창의 생존 투쟁에 있습니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명확한 정치적 갈등 구도를 보여줍니다. 병든 왕이 죽었지만, 중전 조씨는 아직 아들을 낳지 못한 상태입니다. 만약 왕의 죽음이 알려지면 세자 이창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고, 조씨 일가의 권력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조학주는 왕의 죽음을 숨기고, 생사초로 좀비가 된 왕을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합니다. 이 설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흥미진진한 정치 스릴러의 뼈대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자를 역적으로 몰아가는 조학주의 치밀한 계략, 이를 저지하려는 세자의 분투,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신하들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혀들면서 드라마는 단순한 생존 서사를 넘어 권력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진화합니다. 좀비는 이러한 정치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촉매제이자, 권력자들의 탐욕이 빚어낸 재앙의 상징입니다.
조학주, 완벽한 정치적 빌런의 탄생
킹덤의 정치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무엇보다 조학주라는 캐릭터의 존재입니다. 류승룡이 연기한 조학주는 단순히 악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이자, 동시에 딸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은 조학주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조학주의 권력 추구는 개인의 탐욕을 넘어 당시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냅니다. 외척의 권력이 왕권을 능가하고, 신하가 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이는 조선시대 내내 반복되었던 현실이었고, 킹덤은 이를 좀비라는 극단적 상황과 결합시켜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조학주는 백성들이 좀비가 되어 죽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캐릭터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력의 속성을 대변합니다.
특히 조학주가 3년 전 왜란 때 수망촌 백성들을 좀비로 만들어 전쟁에 이용했다는 설정은 충격적입니다. 이는 권력자들이 백성을 어떻게 도구로 취급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살아서도 전쟁의 소모품이었던 백성들이 죽어서까지 이용당하는 모습은, 권력의 잔혹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조학주는 결국 자신이 만든 좀비에게 물리면서 비극적 최후를 맞지만, 그의 죽음조차 권력의 무상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세자 이창, 권력보다 백성을 선택한 리더
조학주가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인물이라면, 세자 이창은 권력보다 백성을 선택하는 이상적인 리더로 그려집니다. 주지훈이 연기한 이창은 초반에는 다소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좀비 역병을 겪으면서 그는 진정한 군주로 성장합니다. 이창의 성장 서사는 킹덤이 단순한 정치 스릴러를 넘어 리더십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지점입니다.
이창이 마주한 딜레마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그는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세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좀비 역병으로부터 백성을 구해야 합니다. 왕권을 되찾는 것과 백성의 생명을 구하는 것, 이 두 가지 목표는 때로 상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창은 일관되게 백성의 생명을 우선시합니다. 이는 조학주와 대비되는 지점이며, 킹덤이 제시하는 진정한 리더십의 모습입니다.
특히 동래부에서 백성들과 함께 좀비와 맞서 싸우는 장면, 상주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들은 이창의 리더십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왕세자라는 지위를 버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백성과 함께 호흡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의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진정한 리더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고난을 견디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당파 싸움과 계급 갈등의 조선 정치사
킹덤은 개인의 권력 투쟁을 넘어 조선시대 정치의 구조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외척과 사림 세력 간의 대립, 중앙 정부와 지방 세력 간의 갈등, 신분제에 기반한 계급 구조의 모순 등이 드라마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특히 안현 대감이라는 캐릭터는 이러한 정치적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조학주의 비리를 알면서도 약점에 잡혀 따를 수밖에 없는 인물로, 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상징합니다.
드라마는 또한 정보의 통제가 권력 유지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조학주가 왕의 죽음을 숨기고, 좀비 역병의 실체를 은폐하려 하는 것은 현대 정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권력의 작동 방식입니다. 반면 세자 이창은 진실을 밝히고 백성들에게 알리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투명성과 은폐, 민주주의와 전제주의의 대결로도 읽힙니다.
킹덤은 결국 좀비라는 판타지 요소를 빌려 조선시대 정치의 본질, 나아가 모든 시대 정치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권력은 어떻게 유지되고 남용되는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백성과 권력자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이며, 킹덤은 이를 매우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좀비라는 극단적 상황은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주제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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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넷플릭스 |
현대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
킹덤이 2019년 공개 당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단지 흥미진진한 스토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정치적 주제들이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사유화, 정보의 은폐, 백성(국민)의 생명보다 권력 유지를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염병이라는 소재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전염병 앞에서 권력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킹덤이 던진 질문이자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킹덤은 단순한 역사 드라마를 넘어 현대 정치에 대한 우화이자 경고로 읽힙니다.
킹덤 시즌 1은 6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치 드라마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좀비라는 화려한 겉옷 아래 권력의 본질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서사,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들, 그리고 현대 사회에도 유효한 보편적 메시지까지. 킹덤은 엔터테인먼트와 메시지를 모두 잡은 보기 드문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